자원봉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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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7- [강일모 님] 초고령 지역에서의 재난
- 작성자
- : 안혁빈
- 작성일
- : 2024.04.08
- 조회수
- : 1961
초고령 지역에서의 재난
<‘재난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강일모 님
저는 부여군 해병대전우회에서 활동한 지 16년 되었어요. 처음엔 자의 반 타의 반이었어요.(웃음) 직장에서 해병대 선배님을 만났거든요. “전우회에 들어와라.” 하셔서 그때부터 하게 된 거죠. 제가 하는 일은 사무실에 매여 있지 않아도 되어서 해병대전우회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아, 근데 저는 해병대여도 포병이라 포만 쏘다 왔기 때문에 수영이나 특수 임무를 못 배우고 제대했어요. 해병대 전우회 활동하면서 스킨스쿠버, 배 운전 면허증을 따고 산악 훈련을 했어요. 구조 활동을 하면서 필요해서 배웠는데 해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생명을 구한 순간
해병대전우회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2023년 7월 13일 부여에 폭우가 쏟아졌어요. 부여 규암면은 인근에 백마강이 흐르고 둑이 있거든요. 그날 밤 강이 범람할 수도 있다는 재난 문자가 왔던 기억이 납니다. 둑 수위가 1m밖에 안 남았다고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둑을 쳐다보고 그랬어요. 그런 상황이면 해병대전우회는 일단 비상 연락망을 돌려서 사람을 모읍니다. 사람을 모아놓는 게 1번이거든요. 둑이 곧 터질 수 있으니 준비하고 있었죠. 해병대전우회 사무실에서 열 명 정도가 대기하면서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밤 9시경 소방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결국, 둑이 무너졌고 강물이 축사를 덮쳤다고요. 축사에 미처 대피시키지 못한 소들이 있다고 했어요. 소방대원들이 보트를 이용해서 소를 구조하고 있는데 힘에 부친다고 지원요청을 했어요. 전우회원들과 장비를 챙겨서 급히 출동했습니다. 수해 현장에서 특별한 장비는 없어요. 토사 치우는 일이 대부분이라 꼭 챙기는 장비는 삽이죠. 사무실에 구명보트, 산소호흡기, 잠수 슈트 정도 있어요. 젊은 대원들 30~40명 정도는 스킨스쿠버 자격증이 있거든요.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축사 지붕 위까지 강물이 찼더라고요.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소도 있고 머리만 내놓고 떠 있는 소들이 많았어요. 70여 마리 중 20여 마리를 구조했고 50여 마리가 물에 둥둥 떠 있는 상태였어요.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는 구조대원들이 모터가 없는 작은 배를 타고 소목에 줄을 걸어서 끌어내는 식으로 구조했더라고요. 그러니 더딜 수밖에 없죠. 저희 보트는 크진 않지만, 모터가 달려 있거든요. 보트를 타고 축사 가까이 가서 모터 힘으로 줄을 당기니까 이동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어요. 그래도 50여 마리를 구조하는데 밤을 꼴딱 새웠어요. 밤 9시에 투입되었는데 다 구조하고 시계를 보니까 아침 7시더라고요. 보트가 작아서 5명밖에 못 타요. 10명 정도 나갔다고 했잖아요. 교대로 쉬지 않고 구조를 했습니다. 동네 분들이 컵라면과 물을 챙겨주셨어요. 길 위에서 먹었죠.
구조하는 중에도 비가 계속 내렸어요. 위험한 상황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수위가 사람 머리 위를 넘겼으니까 3m는 될 거예요. 보트 아래에 모터가 있고 프로펠러가 돌아가거든요. 프로펠러는 철이 닿으면 고장이 나니까 축사 바로 가까이는 못 가요. 근처까지 가서 배에 타고 있던 회원들이 강물에 들어가서 소목에 줄을 묶었어요. 물속에 들어갈 때 위험할 수 있었는데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열심히 해주었어요.
소를 구조할 때 눈을 봤어요. 그 커다란 눈망울을 코앞에서 봤는데 짠하더라고요. 힘을 안 써도 당기는 방향으로 함께 이동해주었어요. 자기를 구해준다는 걸 아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그동안 주로 복구작업에 투입이 되었어요. 비닐하우스나 가정집에서 토사 치우거나 청소하는 활동이 대부분이었죠. 수해가 일어난 현장에서 생명을 구했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잊지 못하는 활동 중 하나입니다.
할머니의 믹스커피
2023년 7월 13일부터 16일까지 집중호우가 쏟아져서 농작물 피해도 컸고 가옥도 많이 침수되어 이재민도 발생했어요. 수해를 입으면 소방서가 바로 출동하고 군에서 공무원들이 나와서 피해상황을 파악합니다. 군청과 자원봉사센터가 연합하여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이 가동된다고 들었어요. 통지단(통합자원봉사지원단)에서 피해 상황을 파악하면 각 봉사단체에 자원봉사자를 요청하세요. 젊은 사람들이 많은 단체, 해병대 전우회, 자율방범대, 의용소방대로 지원 요청하시더라고요. 재난 현장에 교통정리가 필요하면 모범운전자회도 지원해주시죠. 여러 단체를 대기시켜서 재난이 터짐과 동시에 자원봉사자가 투입되고 있어요.
기후 위기 시대라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많아요. 빗물이 잘 내려가야 하는데 막혀서 넘치게 되는 거잖아요. 부여 은산천에 큰 제방이 있는데 7월 집중호우가 내리는 시기에 자주 넘쳐요. 작년 수해 때는 결국 둑이 터졌어요. 금강이 흘러서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물이 빠지지 않아 평야 지대로 역류했어요. 군산 하구둑을 개방해야 하는데 그때가 밀물이라 둑을 못 연 거예요. 물길이 막혀 있으니까 둑 수위가 점점 올라가는 거죠. 수해를 입은 동네는 지대가 낮아서 해마다 수해를 입어요. 지형적으로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재작년 작년 연속으로 재난 지역이었어요.
2022년에도 비슷한 수해가 있었어요. 부여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정도로 피해가 컸어요. 부여군 내 16개 읍면 중 은산면의 피해가 가장 컸어요. 상습침수지역이라 농가 농작물 피해가 심했어요. 산촌 지역 특성이 단시간 내에 많은 비가 쏟아지면 산의 토사와 폐기물이 농가와 집 주변으로 쌓여요. 산사태도 벌어지고요. 담장을 넘는 건 물론 주택 안까지도 쏟아져요.
해병대전우회에서는 은산면 수해복구 지원에도 함께 했어요. 평일인데도 대원들이 10여 명이 모였습니다. 저희가 지원했던 곳은 할머니 혼자 사셨던 집이었어요. 집 뒤가 산이라 토사가 밀려 들어와서 방바닥에 한 뼘 이상 흙이 꽉 차 있었어요.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끌어내고 청소해야 하나 싶었어요. 허리 한 번 못 펴고 삽으로 토사를 퍼냈습니다. 집 밖으로 끌어낸 토사를 마대 자루에 담고 담았어요. 흙을 싹 뺀 후에 집기를 모두 밖에 내놨어요. 다행히 물은 나와서 양동이로 물을 받아다 집 안도 물청소해드리고 집기도 다 닦아 드렸어요. 집과 집기가 말라야 들여놓을 수 있거든요. 하루가 꼬박 걸렸어요. 일을 마칠 무렵에 할머니가 믹스커피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으셨어요. 동네 회관까지 가셔서 믹스커피를 10잔이나 타오셨더라고요. 할머니께서 굽은 허리로 지팡이로 짚어가며 가져다주셨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초고령화 지역, 부여
부여는 초고령화 농촌 지역이에요. 지역에는 젊은 사람이 별로 없고 있다 해도 다 직장에 다니고 있잖아요. 지역에서 자원봉사자를 확보하려고 다방면으로 애쓰고 계세요. 소방대에서는 의용소방대원을, 경찰에서는 자율방범대원을 수시로 모집하고 있는데 인원이 별로 없다고 들었어요. 부여군자원봉사센터에서 10여 년 전에는 전문봉사단을 운영했었대요. 당시는 면접을 봐야 할 정도로 자원봉사자가 넘쳐났다고 해요. 지금은 10명 모집한다고 했을 때 두 명 오면 진짜 많이 오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느 지자체든지 농어촌 지역은 다 그럴 거예요.
부여군 읍면 단위는 거의 어르신들만 살아요. 수해가 발생하면 토사나 폐기물이 마을에 넘쳐나는데 인력이 없어요. 비닐하우스 피해 복구작업이 많은데요. 비닐하우스는 밖에도 덥지만, 그 안은 밖보다 2배 이상은 더워요. 특히 산촌 지역은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사람 손으로 치워야 하거든요. 자원봉사센터에서 중장비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을 조사해서 자원봉사자들을 투입해요. 중장비가 못 들어가니까 리어카, 손수레로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해요. 부여는 재난이 터지면 우선 공무원을 동원하고 지역 민간단체 중에 젊은 사람이 많은 단체 위주로 투입을 합니다.
재난 때는 가용 인력이 없다 보니까 운영상의 어려움도 있지만, 안전상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재난 시에는 아무리 안전을 강조해도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삽질하다 넘어져서 삐끗하시는 분들도 있고 미끄러우니까 넘어지는 사고들도 많았고요. 7월은 무덥잖아요. 탈수나 열사병 이런 건 말도 못 하죠. 그래서 자원봉사센터에서는 60대 70대 어르신이 많이 계신 단체에는 인력 요청을 드리지 않으시는 거로 알고 있어요. 작년 수해 현장에서 지원업무를 하던 분들이 쓰러지신 사고가 3건이나 있었다고 들었어요. 군 단위, 읍 단위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어려움들이 커질 것 같아요.
가장 큰 성취감
해병대는 충남도청 재난안전과와 협동으로 해마다 훈련을 하고 있어요. 백마강에서 익수자가 발생했다고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에 맞는 구조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해오다가 코로나 때문에 몇 해 쉬었고 재작년부터 다시 하고 있어요. 그 외에 봄, 가을에 부여뿐만 아니라 충남 구조단에서 2개월에 한 번씩 모여서 패러글라이딩 훈련, 스쿠버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바뀌고, 새로 들어온 회원도 있어서 훈련을 해야 해요. 전국 각 지역마다 해병대전우회가 있어요. 운영이 활발하든 활발하지 않든 각 지역마다 조성되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부여군에서 보험 설계사로 일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직장에서 만난 선배에게 이끌려서 하게 됐는데 하다 보니까 배우는 것도 많아요. 선배들이 밥도 사주시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동체예요. 읍면 단위의 소도시일수록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유리한 점들이 있어요. 해병대나 특전사 같은 경력이 있는 남성들은 봉사활동에 관심이 없어도 소속감을 갖고 싶어서 들어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공동체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도 도움이 되거든요. 힘들 때 도와주고 기쁠 때 같이 더 기뻐해 주고요.
부여가 인구 소멸 지역이에요. 앞으로 5년, 10년 후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고령화되는 농어촌 지역에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도 걱정이고요. 그런 지역에 해병대전우회 같은 조직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희 단체 역시 젊은 사람은 많진 않아요. 부여 해병대전우회가 70여 명인데 반 이상이 50대 이상이시니까요. 20대 1명, 30대 1명, 40대가 12명 정도 됩니다. 30대, 40대가 가장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매해 7월 수해를 반복해서 겪으니까 여름휴가 안 간 지 한참 됐어요. 여름휴가는 못 가지만 아쉬운 마음은 없습니다.(웃음) 제가 취미가 여러 가지가 있고 등산도 하고 마라톤도 하거든요. 마라톤 완주를 했다든지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성취감이 무지 크잖아요. 그런데요. 봉사활동 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은 그거에 비교할 수 없어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할머니 작은 집을 청소해드리는 활동이 남들이 보기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근데 할머니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실 수 있잖아요. 그때 할머니의 믹스커피 한잔에 피곤한 몸과 마음을 바로 녹았어요. 그렇게 전해진 마음 덕분에 봉사합니다.
주관 - 4·16재단 /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 글 - 홍세미 (인권기록센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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