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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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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3- [전제룡 님] 봉사, 내가 해야 할 일의 1순위

작성자
: 안혁빈
작성일
: 2024.04.08
조회수
: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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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내가 해야 할 일의 1순위 

 

<‘재난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전제룡 님

                                                                                        

 

 

 

최 남쪽에서 최 북쪽으로 간 이유

2019년 4월 4일 강원도 고성군에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은 강풍을 타고 속초시, 강릉시, 동해시, 인제군으로 매섭게 번져나갔다. 소방청은 화재비상 최고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전국에서 헬리콥터 50대, 소방차 872대, 현장 소방공무원 3,251명이 산불 진화에 투입됐다. 또한 산림청 진화대원과 의용소방대원 등 총 1만여 명의 인력이 동원되기도 했다. 2017년 소방청 개청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소방력 동원이었다.

국가 재난 상황에 민간도 힘을 보탰다. 산불 진화 및 이재민 지원을 위해 전국 각지의 자원봉사자들이 강원도로 모여들었고,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주도 하에 전국 30개 기관이 릴레이 형식으로 고성 지역 이재민 및 봉사자들에게 급식을 지원하기로 뜻을 모았다. 경상남도 거제시자원봉사지원센터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거제시 자원봉사지원센터가 산불 이재민을 위해 고성 현지에서 ‘참! 좋은 사랑의 밥차’(이하 밥차)를 운영한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자원한 사람은 전제룡 씨였다.

“거제도에서 고성까지는 최 북쪽과 최 남쪽의 거리라 처음에는 아무 사고 없이 운전해서 갔다 올 수 있을까, 염려가 되더라고요. 며칠간 집을 비우는 것도 가족들에게 미안했고요. 그런데 화마에 수많은 집들이 까맣게 숯이 된 걸 방송으로 보니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한 곳에 있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먼 거리와 긴 여정으로 망설이는 봉사자들을 설득했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로 거제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때 전국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우리가 큰 도움을 받았잖아요.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거제가 그렇게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가 받은 그 도움을 나누고 보답합시다.”

2003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로 전국에서 132명이 사망하고, 4조 7천억여 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매미는 관측 이래 태풍 루사에 이어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큰 피해를 입힌 태풍이었는데, 특히 경상도 지역의 피해가 막대했다. 거제의 경우 5일간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으며, 어선과 어장이 유실·파손된 것은 물론이고 집과 가게, 논밭이 침수되어 마을 절반이 폐허가 되었다. 당시 피해의 암담함과 수습의 고마움을 기억하고 있던 봉사자들이 하나둘 밥차에 합류했다.

저속 운행만 가능한 밥차의 특성상 새벽 3시에 거제에서 출발한 차는 고성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9시간이 걸렸다. 500km를 내리 달려 속초 IC에 들어서는 순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집 사이사이 시커멓게 타 버린 산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성군 천진초등학교에 도착한 그들에게 당장 저녁 식사 300인분을 준비해야 하는 미션이 떨어졌다. 앞팀이 남기고 간 부식과 일회용 식기들을 처리하고, 식단에 필요한 재료와 양념류를 구비 하는 것 모두 거제시 봉사단의 몫이었다. 바지런히 300인분 식사를 준비해 대접하고 못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도시락을 만들어 일일이 배달했다. 그 후 돌아와 뒷정리를 마친 시각이 밤 9시. 다음날 일정도 새벽 3시부터 시작되었고 아침, 점심, 저녁을 이내 모두 대접하고 설거지에 뒷정리까지 마무리하면 다시 밤 9시인 일정이 3일간 반복됐다.

“하루 16시간씩 일을 하니 육체적으로는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집을 잃고 슬픔에 빠져 계신 이재민들에게 따듯한 밥과 국으로라도 위로해드리고 싶었어요. 다행히 이재민 분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얘기도 해주시고, 사탕과 커피를 나눠주시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주시니 봉사 오기 참 잘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생하러 간 거니까 괜찮아요

그로부터 3년 후인 2022년 5월 31일, 전제룡 씨는 밀양의 산불 소식을 접한 뒤 또다시 밥차 팀에 합류해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에 도착한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산 곳곳에 피어오르는 연기였다. 산불은 강한 돌풍을 타고 계속해 번지고 있었고, 소방용 헬리콥터가 하늘을 바삐 날아다니고 있었다. “살면서 그렇게 많고 다양한 헬기를 또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떠올리며 그가 말했다.

밥차 팀에게 주어진 이번 미션은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 산 일대에서 산불 진화 작업을 하는 소방대원과 현장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었다. 재료와 물품 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침, 점심, 저녁 각각 3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늘 최선을 다해도 어려운 법. 여기에 재난 현장은 늘 변수가 많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예정된 인원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몰리면서 급하게 음식을 만들어내야 했다고 밝힌 전 씨.

“소방관분들과 현장 봉사자들이 물통이 든 배낭을 메고 검게 그을린 얼굴로 들어오시는데, ‘그래도 저분들보단 우리가 덜 힘들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두 지쳐 보이셨는데 식사가 다행히 입에 맞으셨나 봐요. 음식 준비한 사람에게는 깨끗하게 비어진 식판이 최고의 칭찬인데, 개수대에 다 빈 식판만 들어오더라고요. 온종일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일했던 피로가 다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밥차 팀에서 주로 어떤 일을 수행한 건지 묻자 전제룡 씨는 “칼질과 잡다한 일들”이라고 수줍게 답했다. 거제시자원봉사센터 최혜선 사무국장에 따르면, 그가 잡다한 일들이라며 무심히 감춘 일들이란 이러한 것들이었다.

“2.5톤 밥차를 운전하고, 언제든지 밥차가 가동될 수 있도록 내부에 설치된 가스레인지와 냉장고, 밥솥 등 제품들을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수리하고… 먼저 다녀간 밥차 팀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회용품과 쓰레기를 정리해 밥차 가동과 배식에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 등 모두요.”

따져보면 밥차 운영을 위해 모두 필수적인 것들이라 일이 너무 많아 고될 것 같다고 하자, 그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고생하러 간 거니까 괜찮아요.”

 

위로하는 마음이 쌓은 인연

2020년 하동 수해현장은 그에게 가장 안타까운 재난 현장으로 기억된다. 2020년 8월 집중호우와 섬진강댐 방류 등으로 하동은 막대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수해복구를 위해 방문한 하동에서 그는 물이 집보다 더 많이 올라 삶터와 일터가 완전히 파괴된 동네를 보았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 해하던 이재민들을 만났다. 그는 함께 간 동료들에게 “마음과 상황이 너무 어려운 분들이니 이분들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조심히 봉사하자”고 말했다.

그는 함께 간 동료들과 무릎까지 차오른 뻘을 걷어내고, 쓸 수 있는 물건들을 골라 깨끗이 씻어 말렸다. 마땅히 밥 먹을 곳이 없어 무더운 날 땡볕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사실 해야 할 복구활동에 비해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이었다.

봉사 일정을 조금 더 연장하고 싶었지만 날씨 탓에 탈진한 봉사자들이 있다 보니 봉사자들의 안전조치 차원에서 활동이 여의치 않았다. 하루종일 이어진 봉사가 끝나고 떠나려는 때, 이재민들은 무더위에 구슬땀을 흘려준 봉사자들의 손을 잡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꼭 한번 다시 들려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하동에 가면 그 마을에 들리곤 해요. 제가 누구인지는 기억을 못하시는데 그때 저랑 대원들이 입고 간 새마을교통봉사회 제복은 기억을 하시고는 우리 도와준 사람이 왔다고 반겨주세요.”

 

봉사로 제2의 인생을 열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건 18년 전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2005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을 전혀 쓰지 못하는 반신마비 상태가 됐다. 누구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했던 때, 그는 7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그 뒤 2년간 혹독한 재활 훈련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행히 일상을 회복했다. 인생이 다시 시작되자 그는 봉사활동에 나섰다. 병원에서 나눔을 베풀던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건강을 되찾으면 저리 살아야지’ 했던 다짐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그는 지역의 지인들과 함께 ‘수성회’라는 자원봉사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는 독거노인들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집을 수리하고 밑반찬을 배달하고, 명절을 챙기는 등 10년간 정기적으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봉사를 해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재미로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보람도 생기고, 의미도 있는 거예요. 또 제가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도 있다 보니 먼저 나서서 봉사활동에 대한 제안도 하게 되었는데, 동료들이 기꺼이 함께 해줘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죠.”

2019년 그는 거제시 새마을교통봉사대 지부를 조직해 출범시켰다. 새마을교통봉사대는 선진교통문화를 안착시키기 위해 주로 어르신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안전 교육과 학교 앞 교통 캠페인 등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이 함께 잘 사는 복지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조직의 목표라고 밝힌 전 씨.

거제시새마을교통봉사대는 30~40명 규모로 다른 지부에 비해 인원은 비록 적지만, 활동량만큼은 전국 지부들 중 가장 높다고 설명한 전제룡 씨는 그 이유를 “대원들이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만 봉사하는 것이 아닌, 이웃과 주변이 상시 필요로 할 때가 있음을 알고 정기적이고 규칙적인 봉사를 하기 때문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첫 사람이자 끝 사람

전제룡 씨는 필요한 자원봉사 요청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거제시자원봉사센터 최혜선 사무국장은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가장 끝까지 있는 분”이라며 전 씨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대장님이 배달 봉사활동도 해주세요. 세종시 광역 푸드뱅크뿐 아니라 함양, 김해 등지에서 물품을 가져와 지역아동센터에 배분하는 일인데, 날짜가 정해진 경우도 있지만 급하게 가야 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럴 때마다 대장님이 제일 먼저 자원해주세요. 운전해서 가면 물품을 차에 실어주는 게 아니기에 일일이 다 차에 실어야 하는데, 그게 정말 힘들거든요. 그런데도 돌아와서 물건 내리고 정리하는 것까지 모두 해주세요. 너무 고맙고, 대단하고.. 늘 한결같은 대장님을 보면서 봉사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워요.”

전 씨에게 자원봉사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함에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실 봉사를 통해 가장 행복한 사람은 저예요. 청소해서 깨끗한 집, 그리고 좀 더 나아진 생활,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 제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거든요. 자원봉사는 늘 제가 해야 할 일의 1순위예요.”

그는 매일 2만 보씩 걷는다. 건강을 지켜 오래도록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그의 바람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인터뷰를 마치고 오후 봉사를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리 빌었다.

 

주관 - 4·16재단 협력 -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글 -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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