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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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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지막 추석

작성자
: 이수빈
작성일
: 2022.01.07
조회수
: 279

마지막 추석

 

대한적십자사 중구지구협의회 장영란

 

둘만의 의사 소통

50여 년 전,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예쁘고 얌전한 친구가 전학을 왔는데, 그 친구는 말을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농아였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그 친구를 벙어리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보며 아주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항상 그 친구 옆을 지켰는데, 때로는 땅바닥이, 때로는 유리창이, 때로는 벽이 둘만의 의사소통 장소가 되어 그곳에 글을 쓰며 우리는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전학을 갔고, 소식을 알 수는 없지만 아직도 아련하게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법

친정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항상 베풀며 살아야 한다.”(잠깐 쉬고) 저는 자라면서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농아 친구와 부모님이 제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나는 동네 목욕탕을 가면 어르신들을 등을 밀어드리고, 난전에 장사하시는 분들을 위해 음식을 나누고, 따뜻한 말을 건넸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를 떠올리며, 수어를 배워 농아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봉사가 어느덧 내 삶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덧 동네에서 아주 착한 아가씨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김장 이미지 

 

본격적인 시작

나눔 활동은 결혼을 하고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시부모님 역시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심지어 주변 상인들의 식사까지 챙겨주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97년 시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아는 분께서 나에게 삶의 활력이 필요해 보인다며 봉사를 권유했습니다. 그때부터 중구청 가사봉사원에 가입하여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지막 추석

중구에는 본래 노인 인구가 아주 많습니다. 가사봉사원에서 활동을 하며 어르신 댁을 방문하여 반찬을 전달했는데, 그때 한 어르신과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98년 초여름. 대상자 어르신을 방문하여 반찬을 전달하려는 때, 갑자기 옆집 어르신이 대문 안에서 얼굴을 빼꼼 내미시더니 얼른 문을 닫으시는 겁니다. 어르신이 왜 저러시지? 하고는 곧 잊었습니다. 이후 방문할 때마다 빼꼼 내다보시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시는 옆집 어르신. 나와 눈이 마주했을 때 안색이 너무 초췌해 보여 마음이 쓰였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 어르신 도시락을 직접 준비하여 문 앞에 살짝 두고 왔습니다. 돌아온 것은 고맙다는 쪽지와 함께 깨끗이 설거지 된 도시락. 그 후로도 서너 번 더 도시락을 문 앞에 놓아드렸습니다.

계속 신경이 쓰여 하루는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곳에는 지병으로 한없이 야윈 어르신이 서 계셨습니다. 당시 동사무소에 상담을 했는데 그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어르신과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거동이 힘들어 병간호는 물론 통원 치료까지 동행했는데, 전혀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어르신은 늘 우리 아들보다 백배, 천배 더 낫다, 그리고 고맙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달쯤 후, 어르신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 마지막 추석이 될 것 같은데, 추석상 차리는 것 도와 줄 수 있겠나?” 나는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정성껏 추석 상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왜 그리 아팠을까요? 혼자서 엄두도 못 내셨던 추석 상차림을 보고 너무 행복해하시며, 밝게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얼마 후 어르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추석 상이 어르신의 마지막 숙원이었을까요? 어르신은 모든 걸 다 이루신 것처럼 평온해 보였습니다.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면서 늘 고마웠고 평생 잊지 않을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며칠 후 어르신께서 임종하셨습니다. 어르신과 연을 맺은 것은 불과 4~5개월 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일까요? 나와 어르신 사이 마음의 연결 고리는 평생을 알고 지낸 인연처럼 단단합니다. 어르신 역시 마지막 임종 순간에 나와 함께하셨기에 덜 외로우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요? 마지막 순간만큼은 내가 행복을 드릴 수 있었기에 참으로 다행입니다.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 봉사활동 이미지 

 

선물

이후 나의 봉사는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2000년 대한적십자사 대청동 봉사회 회원이 되어 활동을 했고, 2002년 아시안게임, 부산광역시자원봉사센터 코디네이터 교육도 이수하며 봉사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갔습니다. 이제는 주변에서 격려를 넘어 진정으로 나를 신뢰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를 따라 봉사를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요. 이것은 어쩌면 어르신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화답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앞으로도 누군가의 평생을 위로하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비록 혼자힘으로 고독사를 막을 순 없지만, 삶과 죽음의 가치는 평등하다고 믿으며 오늘도 누군가를 위로하러 집을 나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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