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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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9- [김영란 님] 전국을 누비는 봉사단
- 작성자
- : 원종운
- 작성일
- : 2024.07.25
- 조회수
- : 1522
전국을 누비는 봉사단
<‘재난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김영란 님
어디든 달려가는
권은정 부장:
늦은 밤에 긴급하게 요청을 드려도 다음 날 아침 일찍 현장으로 출동하는 봉사단이 있어요. 대구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전국 어디든 출동하는 <대구사랑봉사단>입니다. 대구사랑봉사단에서 오래 함께 봉사해주신 김영란 님을 소개드려요.
김영란:
안녕하세요. 대구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김영란이라고 합니다. 저는 예순여덟 살입니다. 나이가 많죠? (웃음) 늦게 시작한 봉사로 이 나이에 상을 받게 되어 조금 민망합니다. 봉사는 얼떨결에 시작했어요. 40대 중반에 대구지역 여성들을 위해 평생교육을 해주는 동방여성대학에 들어갔어요. 1년 동안 여행도 다니고 노래 수업, 부모교육 같은 교양수업도 받았어요. 과정을 마친 후에 봉사하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서 손을 들었어요. 그렇게 봉사를 하게 되었고 어느새 25년이나 흘렀네요. 당시 동방여성대학에 봉사팀이 18개나 있었고 자원봉사자가 800명이 넘었어요. 시각장애인 동행 봉사팀, 급식 봉사팀 등이 있었는데 저는 시각장애인 동행 봉사를 했어요. 집에서 세끼 밥을 하는데 밖에서도 밥을 하긴 싫었거든요. (웃음) 그전에는 자원봉사가 뭔지 몰랐어요. 시각장애인분들에게 하얀 지팡이가 눈을 의미한다는 것조차 몰랐죠. 봉사 정신이 있었다기보다 철부지 마음으로 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웃음)
권은정 부장:
대구사랑봉사단은 대구시종합복지회관 소속이었다가 2012년부터 민간단체로 분리되어 활동하고 있어요. 현재 대구광역시자원봉사센터(이후 대구센터) 소속입니다. 대구센터에서 지원요청 드리면 거절하시는 법이 없으세요. 어느 현장이든 “일단 가보자.”라고 말씀해주세요. 긴급한 상황이라 센터에서 버스 대절을 못했을 때도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알아서 갈게.” 하시면서 봉고차를 빌려오시죠.
김영란:
거절을 할 수가 없어요. (웃음) 현장에 나가보면 얼마나 손이 필요한 곳이 많은지 몰라요. 작년 수해 때도 충북 괴산으로 긴급하게 봉사를 하러 갔는데요. 한 피해자 가족은 형편이 어려워서 비닐하우스에 살림을 차려놓고 사시다가 수해를 당하신 거예요. 그때가 8월이라 정말 더웠어요. 그 집에 봉사자 4명이 매달려 진흙투성이인 집안 살림을 꺼내 닦아드리고 왔어요.
권은정 부장:
현장에서는 지원하면서도 피해자분들 마음 다치지 않게 살피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피해자분들은 “많이 힘드시죠?”라는 말 마디가 큰 힘이 되신다고 해요.
김영란:
봉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는데 주인아저씨가 봉사자들이 타고 온 버스 트렁크를 열어보라는 거예요. 내다 파시려고 애써 키운 호박을 두 박스나 실어주셨어요. 우리는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그분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뿌듯하더라고요. 그런 작은 순간들이 큰 보람입니다.
재난을 많이 겪은 도시
권은정 부장:
대구는 과거에 재난을 많이 겪었어요. 2003년 2월 18일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어요. 그 당시 대구시민회관에 분향소를 차렸고 대구센터에서도 자원봉사자를 즉각 파견했어요. 분향소 물품 정리하는 일이나 식사 지원같이 자원봉사자가 필요한 일들이 있거든요. 대구 지하철 참사는 참사 수습하기까지 6개월이 넘게 걸렸어요. 시내 한복판에서 많은 시민이 희생되신 대형 참사였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종합복지회관 소속이셨던 대구사랑봉사단원 분들이 그 시간 내내 분향소에서 함께 해주셨어요.
김영란:
곁에서 작게나마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갔지만,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무엇이 위로될 수 있겠어요. 그런 재난 상황에서는 보람이랄 것도 없어요. 망연자실해 계시는 유가족분들을 뵈면 작은 위로의 말조차 드릴 수가 없어요. 온종일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유가족분들 물이라도 드시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현장에 있었습니다.
권은정 부장:
대구는 매천 농수산물 도매시장 화재, 서문시장 등 대형 화재사고도 있었어요. 그런 현장에는 당연히 자원봉사자를 파견합니다. 현장에서 자원봉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찾아서 하려고 해요. 대개는 간식 지원, 주변 정리 등의 일이에요. 화재 현장은 소방관이나 상인들이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 간단히 드실 수 있는 간식 지원이 필요하거든요.
김영란:
재난 현장에서 저희가 하는 일은 잘 드러나지 않아요. 피해자분들에게 묵묵하게 힘을 드리는 게 저희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실 때 큰 보람을 느껴요.
코로나19 당시에도
권은정 부장:
코로나19 당시도 재난 상황이었어요. 2020년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당시 병실도 부족하고 의료 인력도 부족한 상태였어요. 대구 시민 대부분이 아무도 안 움직여 길거리가 조용할 정도였어요. 코로나19 지정병원에 자원봉사자 인력이 절실했어요. 그때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문제를 두고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자원봉사자를 파견할 때는 자원봉사자의 안전을 가장 우선해야 하거든요. 고민 끝에 자원봉사자가 들어가도 되겠다고 판단했고 지원 요청할 곳으로 가장 먼저 대구사랑봉사단을 떠올렸어요. 대구사랑봉사단은 어느 현장이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팀이거든요.
김영란:
우리 김영순 단장님의 리더쉽이 대단하거든요. (웃음) 하겠다고 결정하면 힘을 합해야죠. 그때 도시가 봉쇄되다시피 해서 심리적으로 대구 밖을 못 나갔어요. 대구에서 왔다고 하면 코로나 확진자 취급을 했었잖아요. 친정어머니가 경북 영천에 사시는데 제가 대구에 산다고 오지 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대구의료원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입원해서 봉사자가 필요했는데 지원자가 없다고 했어요. 당시는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서 스치기만 해도 감염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잖아요.
권은정 부장:
실제로 위험할 수도 있었잖아요.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방역복을 입어야 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복장을 다 갖추고 코로나 확진 환자들을 병실로 안내하고,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정리하는 일을 했어요. 마스크를 2장씩 소분해서 포장하는 일도 하고요.
김영란: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봉사했는데 매일 한 번씩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어요. 방역복을 입으면 덥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힘들어요. 안내 봉사다 보니까 응급실 가까이서 일했는데, 확진자분들이 출입하는 통로였어요. 속으로는 겁이 많이 났어요. 그때 코로나19 지정병원에서 자원봉사 했던 건 주변 사람들 아무도 몰랐어요. 가족들도요. 봉사하는 동안 가족들 몰래 거리를 두고 지냈죠. (웃음) 그래도 환자분들이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런 시기를 겪으니까 단단해진 것 같아요. 어떤 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싶어요.
무엇보다 예방
권은정 부장:
대구는 재난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예방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작년 자원봉사 브랜드가 ‘대구는 안전한 도시다’였어요. 예방을 위한 여러 사업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제는 대구 시민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김영란:
올해 활동 중에 도로 반사경 닦는 활동이 있어요. 반사경이 지저분하면 잘 안 보이잖아요. 자원봉사자가 쓰레기 주우면서 반사경을 닦는 활동이에요. 일상생활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챙겨서 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가 좋아요.
권은정 부장:
대구는 재난 예산이 별도로 책정이 되어 있어요. 15년 전부터 폭염 예산을 따로 마련해두고 있어요. 폭염 특보가 발령된 지역에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시민들한테 병입수돗물을 공급해드리고 있어요. 다중 집합 장소에 계시는 어르신들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을 드려서 폭염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자는 의미예요.
김영란:
그런 현장에 가면 물품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대구시는 그런 물품 지원도 많아요. 그게 참 든든해요.
권은정 부장:
맞아요. 대구시는 2007년부터 전국 최초로 대구기업자원봉사협의체가 구성돼 있어서 기업 후원도 계속 이어져요. 협약서에 재난 대응을 같이하고 지원한다는 문항이 마련되어 있어요. 협의체에 속해있는 기업은 재난이 발생하면 대구센터를 통해서 후원하고 있어요. 현재 협의체에 속한 기업이 36개나 됩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재난 대응 교육도 매년 하고 있어요. 교육하다 보니 소외계층의 재난 위기 대응에 대한 부분도 고민되더라고요. 올해는 장애인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재가 가정 내 안전을 점검하는 봉사단을 새롭게 만들었어요. 가스 밸브나 콘센트와 같이 꾸준히 점검할 것들이 있잖아요. 자원봉사자 2명이 장애인 가정과 매칭되어 꾸준히 방문하면서 집안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점검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후에 장애인분들의 재난 시 대피 훈련도 해보려고 해요.
도움이 필요한 곳 어디든
권은정 부장:
대구가 재난을 많이 겪었잖아요. 재난은 긴급 복구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해요. 대구는 재난자원봉사 SOS 지원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요. 재난 현장에 저희가 할 역할이 있다고 판단되면 재난 발생 3일 이내에 현장에 나가는 게 원칙이에요.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예상되면 자원봉사자분들께 지원 나가게 될 거라고 사전에 연락을 취합니다. 지금은 시스템, 인력, 물품 지원 등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요. 세월호참사 이후에는 심리상담 지원 분야도 추가하여 현재 77개 기관 단체가 함께 협업하고 있어요. 대구센터가 자원봉사자 인력이 가장 많은 곳 중 한 곳이라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전국 어디든 지원 나가고 있습니다.
김영란:
포항 둑이 무너졌을 때도 가고 강원도 수해 때도 가고 전라도도 가고 전국을 다니고 있어요. (웃음)
권은정 부장:
대구사랑봉사단 분들은 거의 모든 현장에 다 가셨어요. 작년에 전국적으로 수해 피해가 컸잖아요. 강원도, 포항뿐 아니라 작년에는 대구 군위도 가시고 충북 괴산에도 가셨죠.
김영란:
서울도 갔잖아요. (웃음)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때 상가 복구 작업을 했어요. 미용실 미용기구도 닦고, 노래방 탁자랑 벽도 닦고요. 서울 서초구는 부자 동네라고 알려졌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가 거기까지 가야 해?”라고 물었어요. 막상 가보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권은정 부장:
버스 한 대에 자원봉사자 마흔 분이 출동하셨어요. 대구에서 가니까 왕복 이동 시간만 8시간이나 걸리잖아요. 그 힘든 일정을 당일치기로 3일을 연속으로 하셨어요. 정말 고생 많으셨죠.
김영란:
저희가 어디든 가는 이유는 대구센터를 믿기 때문이에요. 대구센터는 무리한 요구는 안 하거든요.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일이니까 요청하는 거로 생각해요. 센터에서 요청하면 단장님도 그렇고 저희도 그냥 따라요. (웃음)
내 인생의 즐거움, 봉사
권은정 부장:
코로나 시국까지 거치면서 재난 현장에서 묵묵히 단장님과 김영란 님이 대구사랑봉사단을 잘 이끌어 주고 계세요. 저희와도 소통이 잘 되어서 대구센터에 쓴소리도 많이 해주세요. 저희보다 현장을 잘 아시기 때문에 활동이 끝나고 나면 피드백을 해주세요. 그런 피드백이 참 소중해요. 바로바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두 분 피드백 덕분에 실수를 줄일 수 있어요. 건강하게 오래 함께 해주실 거죠?
김영란:
그럼요. 저는 자원봉사가 인생의 즐거움이에요. 지난주는 일주일에 4일이나 봉사활동을 나갔더라고요. (웃음) 이제 봉사를 뺀 인생은 생각할 수가 없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즐겁게 하고 싶어요.
주관 - 4·16재단 /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 글 - 홍세미 (인권기록센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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