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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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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연탄 한 장

작성자
: 안혁빈
작성일
: 2021.06.24
조회수
: 6945

 

어떤 소녀

오래전에 머리를 길게 땋은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수줍음을 많이 탔고 다소 겁먹은 표정으로 웃음을 짓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에게는 소년소녀가장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지역 읍사무소에서 매월 쌀과 지원금을 받고, 어른들이나 단체로부터 봉사와 보호를 받으면서 어렴풋이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갔습니다.

 

그 소녀는 자신이 받는 혜택들이 창피하고 싫어서 감사함을 잘 몰랐습니다.

단지 그러한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한 끝에 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당당히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고, 대학에 입학한 다음 대학원까지 졸업하게 되었으며 한때는 대학 강사 및 유명 기업체의 간부로 재직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국제푸드 & 테이블웨어박람회 대상 기념사진

이제는 가정을 갖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파주시에서 의류판매업을 하면서 당당히 자립하게 된 그 소녀가 바로 이 자리에 서 있는 저 성선미입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잘나서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닙니다.

철이 들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지금까지 저를 지켜주고 키워준 힘은 바로 지역 사회의 도움과 제 주변의 따뜻한 보살핌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활비에 보태라며 봉투를 건네주시던 몇몇 분의 따뜻한 손, 연탄을 사서 겨울을 춥지 않게 지내라고 손을 잡아주시던 택시 기사님, 설날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가래떡을 머리에 이고 언덕 위에 있는 저희집까지 오시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설탕에 찍어 먹으라고 건네주시던 동네 할머니, 언니가 입었던 옷인데 작아서 못 입는 거 고쳐왔다고 입혀주시던 아주머니, 그리고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던 나의 생일에 케이크를 사주셨던 그 우체부 아저씨...

 

살아오면서 그분들의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저는 눈물을 훔치곤 합니다.

비록 그때는 그분들에게 감사의 미소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 봉사자님들이 저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따뜻한 돌봄과 배려를 받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그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받은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틈틈이 배워 온 케이크와 제과 제빵기술을 활용하여 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강의하는 모습, 요리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봉사는 봉사를 낳고

저는 우리 지역의 소년소녀가장,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을 돕고 싶지만 그 대상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기 싫어한다는 점을 잘 알기에 명절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또는 돌잔치에 적절한 케이크를 만들어 동사무소의 협조를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동사무소는 제가 어릴 때 도움을 받았던 바로 그 동사무소입니다.

 

매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나는 파티쉐라는 체험 시간을 통하여 아이들이 직접 요리를 만들고 집에 가져갈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하여 혹시라도 제가 어린 꿈나무 친구들에게 취미가 아닌 희망의 기술을 전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합니다.

그래서 케이크 제조 부분에 노력을 다하여 서울국제푸드앤테이블웨어 박람회에 출전하였고 여성가족부장관상대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현재 파양된 유기견 세 마리를 입양하여 키우며 직접 재봉으로 애견방석과 옷을 만드는 등 유기견 관련 봉사를 하는데 남편과 두 아이들까지 나서서 함께 합니다.

주변에서 응원을 해주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저의 옷가게 손님들께서 봉사 소문을 듣고 이불과 애견 용품을 가게로 가져오는 분들도 계시고, 토요일 매출 수입액의 10%를 유기견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토요일에 옷을 구매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연탄 한 장

사랑은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봉사도 또한 봉사를 받은 사람이 그 배려의 가치를 알고 감사함을 깨달아 자신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안도현 님의 연탄 한 장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그렇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한 덩이 재로 남는 게 두려워, 온몸을 불태워 따스한 온기를 나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겠습니다.

까만 연탄 한 장이 되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봉사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아서 실망하시는 동료 봉사자님도 계시겠지만 저는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봉사와 사랑은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오히려 실천하는 사람 모두에게 가슴 벅찬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시간에도 전국의 곳곳에서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어가는 아름다운 봉사자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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